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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38 - 내부자들(피해자들)
등록일: 2020-10-21

책사, 모사 그리고 야바위 

 

 

'책사(策士)'라는 낱말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는 큰 일을 하는 사람을 도와 책략을 잘 쓰는 이를 뜻한다. 국가와 같이 넓은 범위의 공공의 선(善)을 위하여 정책을 만드는 인물이 책사라 하겠다. 

 

'모사(謀士)'는 일을 꾸미는 사람, 일이 이루어지도록 꾀를 내는 사람을 말한다. 두 낱말은 '일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일맥 상통하고 또 같은 혹은 비슷한 뜻으로 서로 바뀌어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이 도모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것인가, 행여 다수라는 이름으로 소수에게 정도 이상의 희생과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닌가, 거대한 정세(政勢)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낸 '꾀'의 방향은 옳은 것인가, 등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책사의 몫이다. 보다 넓게 그리고 깊게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사는 그러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들의 첫째 임무는 바로 상대방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것이며 그들이 말하는 '우리'에 세계 인류는커녕, 민족이나 국가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저, 그 속에 공통의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 집단일 뿐이다. 자신들이 속한 그 '집단'에 혜택이 돌아가면 그만이다.

 

책사는 도덕과 윤리, 상식과 명분에 제약을 받는 반면 모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냥 그들만의 의리만 지키면 그만이다. 같은 조건이라면 모사가 더 많은 카드를 쥐게 된다. 그래서인지 전자보 다는 후자가 더 잘나고 똑똑해 보일 때가 많다.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분류되는 집단 이기주의가 넘처나는 이 시대에 더욱 책사보다는 모사가 더 대접을 받곤 한다.

 

오랫동안 국가 경제 부흥이라는 구실로 특정 경제 집단에 모든 역량을 몰아 주었고 ―그것이 국민들의 자의(自意)는 아니었겠지만 ― 그들은 이른바 재벌이라고 불린다.

 

그러한 방법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의 논의는 일단 뒤로하고 기왕 그렇게 되었다면 아직 시장 개방이 덜 된 보호무역이라는 여유가 있을 때 국제 시장에서 외국의 거대 기업들과 경쟁력을 갖추도록 각자 특화된 분야에 집중하고 옳은 경영을 하라는 국민적인 외침을 그들은 저버렸다.

 

그저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리고, 조금의 이익에도 군침을 흘리며 중소기업에게 양보하여야 할 사업 영역에까지 문어발을 뻗히다가 나라에 큰 위기를 가져오는 바람직하지 못한 주역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대한민국이라는 우물 안에서 황제 노릇을 하고자 그저 어떻게 하면 법의 그물을 피해 갈 수 있을까 궁리했던 그러한 모습은 결국 모사의 꾀이지 책사의 꾀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어차피 술수와 모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인들의 선거라고 하지만 약간이라도 더 명분에 가깝고 이른바 전문가들에게 더 나은 평가를 받은 정책을 내세우는 후보보다는, 논리적 일관성과 실현 가능성보다는 장비빛 환상을 향한 부추김, 바람몰이, 언론 플레이, 머릿수 계산 등의 '잔머리 싸움'에서 이긴 후보가 결국 번번이 승리를 거머쥔 경우가 태반이다.

 

자꾸 이런 모습이면 모사가 더 대접받는 상식과 명분에도 관심을 두는 사람이 바보가 되어 버리는 서글픔은 되풀이된다. 본디 속임수로 돈을 따먹는 놀음에서 비롯된 '야바위'라는 낱말은 그럴듯 하게 거짓을 꾸며서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충족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쓰는 말이다. 논리나 이치, 근거는 필요 없다. 단지 야바위들에게 필요한 것은 속임수를 믿게 만드는 연기력과 분위기 만들기이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이기심이 바로 이 야바위인 것이다.

 

식견은 부족하면서 술수에는 능한 사람이, 주변을 힘들게 하면서 교활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도 때를 묻혀야만 한다', '적당히 비겁해져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패배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식견을 갖추고 큰일을 하는 이는 책사이건만 책사는 모사를 이기지 못하고 모사도 야바위는 감당하지 못한다. 이러한 역설(逆說)이 성립하는 이유는 바로 게임의 룰이나 도의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광조는 결국 훈구파들의 모략에 밀려 사화를 당했고 우리의 조상은 그 뛰어난 두뇌를 활용하지 못하고 정약용을 귀양보냈다. 이젠, 정말이지 그 악순환을 깨야만 한다.

 

어느 정당에서 먼저 시작했던 이른바 국민경선이 막바지로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장 유력하다며 집중 조명을 받았던 어떤 후보가 우직함과 일관됨을 무기로 삼은 다른 후보에게 역전을 당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나 실현을 위하여 애써 왔다며 뽐내는 경력이 무색하게도 지난날의 공적(公敵)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 배를 탄 상대방의 '사상'을 의심한다. 당시의 수구적 군사 독재자들에게는 그 자신 또한 '빨갱이'이었으련만.

 

애꿎은 상대방 아내의 마음 속 상처마저 들쑤신다. 최소한의 도의는 없다.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봉건적인 체면마저도 잊어 버린 지 오래다. 현직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서 긴 세월을 함께 했던 이른바 동교동계라는 '집단 속의 또 다른 집단'에게 노골적으로 지원을 받아 왔다는 사실은 온데 간데 없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손'을 운운하며 그 동교동계의 주인을 직접 겨냥한다.

 

필요한 것은 실감나는 연기력이고 관중들이 지난 일은 잊어 버리고 자신이 만들어 퍼뜨리는 실체가 없는 묘한 향기에 취해 주길 바랄 뿐이다. 온누리를 위한 진지한 고민은 커녕 집단 내의 이른바 최소한의 의리마저도 찾아 볼 수 없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 모습은 책략, 모략, 야바위의 술수 중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인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선거'는 선수들만이 존재하는 게임이 아니라 관중들과 함께 하는 잔치이기도 하다. 관중들이 무관심하거나 규칙을 잊어 버렸다면 불행이겠지만 이젠 우리의 관중들은 그 옛날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다행이다.

 

상식이 그립습니다. ​ 

 

 

출처:

한겨레 토론방 /오늘의논객 

 

대통령기록관 

 

 

 

 


모사꾼들에게 쉽게 버려진 내부자(피해자)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보냅니다.


[人方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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